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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 Charmdoctor clinic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1-02-02 오후 9:30:13
조회 : 6432
루터, 괴테 그리고 독일 여정

루터, 괴테 그리고 독일 여정

오전 10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1시간이나 늦어진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가 이륙한 시간은 오후 2시였고 11시간 반 만에 독일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저녁 식사 후 다시 4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하여 국제여자의사회 총회가 열리는 뮌스터에 도착했다. 여행은 역시 준비하고 기다리는 설렘과 지루함의 탈출, 그리고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의미가 있나보다. 밀폐된 공간내의 장시간 비행기 여행은 사람 냄새에 치인 참으로 고달픈 여정이었다.

1주일간의 학술대회와 총회에 참석하며 준비한 포스터도 무사히 발표하고 편한 마음으로 프랑크푸르트와 뮌스터 사이에 있는 뒤셀도르프와 에센, 퀼른, 본, 루데스하임, 로렐라이,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를 잠깐씩 둘러보게 되었다. 개원 후 20년 만에 갖게 된 긴 여름휴가였다.

뮌스터는 신교도와 구교도의 전쟁인 30년 전쟁 (1618∼1648) 동안에 중립을 지켰기 때문에 전쟁을 끝내는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된 곳이다. 공원과 숲과 호수가 잘 어우러진 자연친화적으로 정돈 된 전원도시였으며 우수한 대학이 많은 도시였고 내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마르틴 루터로 인해 시작된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탄생이었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다가와서 은혜를 베푸는 구원자임을 발견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즉 인간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진리를 믿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루터는 돈을 받고 죄를 면해주는 면죄부 판매 등 교회의 부당한 처사를 비판했기 때문에 1521년 교황으로부터 파문과 추방을 당했으며 독일 전체에 개신교 운동을 일으켰다.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표어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였으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 가톨릭이 인정하는 구약 시대의 외경과 신약시대의 위경을 배제하고 정경인 신약 27권과 구약 39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였다. 이 후 개신교는 다양한 계파로 분리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양한 언어와 민족의 이민자들로 인해 많은 교파로 분열된 미국의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에 오늘 날까지 60여개가 넘는 교단들로 혼잡을 이루게 되었다. 나 또한 기독교인으로서 종교개혁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신 구교도 간의 전쟁이 끝난 곳인 뮌스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독일여행에서 가보고 싶었던 곳은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생가였다. 60~70년대 중고교 시절을 보낸 우리 세대들은 문학도 음악도 유난히 고전에 대한 집착과 허영심이 있었다. 러시아 문학작품과 괴테와 단테와 헤르만 헤세, 그리스 로마 신화, 세익스피어, 앙드레 지드, 브론테 자매의 소설 등은 꼭 읽어야 할 목록이었다. 마구잡이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던 그 시절에 내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할 수 없다. 이 나이 되어서야 알 것 같은 ‘파우스트’가 쓰여 진 곳을 꼭 방문하고 싶었고 특히 괴테의 서재를 둘러보고 싶었다.

괴테는 1749 프랑크푸르트암마인에서 출생하여 1832년 사망하였다. 그는 시인·극작가·화가로서의 예술 활동 외에도 자연 과학자였으며 정치가로서 바이마르 공국의 재상으로도 활약하였다. 83세에 죽는 날까지 평생 인생과 우주 만물에 대한 모든 것을 사랑했고, 특히 여인을 사랑했고, 책을 사랑했고, 마지막에 자신의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던 신을 발견하고 사랑했던 것 같다.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으며, 희곡 ‘파우스트’는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60년 동안 83세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했다고 한다. 세기의 위인이 80이 넘은 나이에 완성한 걸작 ‘파우스트’를 어릴 때 읽으면서 어려워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파우스트’는 ‘파우스트의 전설’을 희곡으로 쓴 것으로 세상 지식을 추구해 온 인간의 비극,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시험하는 악마의 유혹, 영혼을 팔므로 젊음을 되찾고 비극의 결말에 이르지만 결국은 순수한 여인의 사랑과 영성의 발견과 회개로 인해 신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대서사시 이다. 갈등하고 유혹당하면서 선과 악의 싸움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며 역사의 서사시며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으로 꼽히는 이어령 선생이 70이 넘어서 하나님을 영접하여 세례를 받고 발간한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이 있다. 이어령 선생의 세례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렸는데 그의 책속에도 같은 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진정 ‘지성이 아닌 영성으로’ 구원을 얻은 파우스트 박사에게서 인간의 구원을 바래본다. 괴테의 지성은 항상 젊은 나를 매혹시켰지만 영성의 고귀함을 나 자신 체험하면서 80세가 넘은 괴테가 죽기 전에야 완성할 수 있었던 파우스트 박사의 최후를 되새겨 보았다.

‘언제나 갈망하며 노력하는 자는 구원될 수 있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만물을 기르고 만물을 품어내는 것은 전능한 사랑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 한다’-희곡 ‘파우스트’에서 가져온 글들이다.

괴테의 생가에 보존 된 유품들은 괴테에 대한 독일인의 애정을 나타내 주었다. 2차 대전 때 건물이 파괴되기 전에 미리 유품들을 옮겼으며 그 이후 4년에 걸쳐 그대로 복구 시켰고 다시 괴테의 생존 당시처럼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4층으로 된 건물 내부의 20여 개의 방은 당시 상류층이었던 괴테와 그 가족의 삶의 흔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건물 4층에는 괴테가 ‘파우스트’ 1편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 수많은 작품들을 집필한 방이 있는데, 항상 서서 글을 썼다고 하며 그가 사용하던 높은 책상이 있다. 나는 그의 서재의 책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지성을 넘어 선 영성과 지성과 조화 된 영성에 대한 열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올라온다.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두려워하라’
‘책장이 점점 살쪄감에 따라 생활비는 점점 줄어든다.’
‘나는 독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는데도 아직까지 그것을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괴테의 말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살고 최고의 지성인 괴테지만 이런 어려움들도 있었나 보다. 책장이 살쪄가는 정도는 감당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읽을 시간과 체력이 부족한 것을 어디서 하소연 할까. 아마 요즘처럼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살았다면 괴테도 그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괴테가 읽었을 책들을 보면서 생각해 본다. 내 나이 80이 넘어서도 내 지성과 내 체력이 독서를 감당케 되기를 항상 내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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